이번 코스는 이틀 전부터 같이 지내던 윤철수 사장 부부와 함께 한다. 원래 이 15코스는 한림항 비양도행 도선 대합실에서 출발하여 선운정사를 지나, 납읍리를 거쳐 고내포구에 이르는 코스였으나, 내륙 코스가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없어서인지 해변을 따라 걷는 코스를 새로 개설하여 , 원래의 코스를 A코스로, 신규 개설한 코스를 B코스로 하여 듀얼로 운영한다. 오늘 우리는 한림항에서 B코스로 시작하여, 절반쯤 지나는 곽지해수욕장에서 코스를 이탈하여 내륙으로 들어가 납읍리에서 A코스로 한림항으로 컴백하기로 한다.
한림항을 벗어나 바로 나타나는 수원리 마을은 첫눈에도 깨끗하다는 인상이 든다. 마을 길이며, 주택 주변이며, 주변의 밭까지도 아주 정갈하게 꾸며진게 잡티 하나 없다. 혹여라도 내 발길에서 먼지라도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여러번 느낀 바이지만 제주도에 이렇게 많고 다양한 농작물이 재배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양배추, 쪽파, 마늘, 비트, 케일, 무우, 배추 등 종류도 다양하고 그 규모도 엄청나다. 걷는 걸음으로 밭둑을 따라잡기가 어렵다. 여기 저기 이랑 사이를 누비며 작물을 손보는 아낙들의 손길이 바쁘다.
마을 거리를 지나 해안으로 들어서니 바로 해걸음 마을이다. 마을의 해안에 접하는 도로 가장자리에는 방파제 겸 담벽을 만들어 놓았는데, 길게 이어지는 담벼락에 그려진 각종의 어린이 놀이 장면이 절로 웃음이 나오는게 옛 추억을 떠올린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 곳곳에는 삶에 꼭 필요한 용천수가 있는데 이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들을 보아도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용천수를 끔찍이 여기는가를 알 수 있다.
잠시후 귀덕리 마을에 들어서면 "제주 영등할망 신화공원"을 볼 수 있는데, 영등할망과 관련된 전설을 기록 보존하는 공원이다. 영등할망이란 음력 2월 초하루에 북쪽에서 찾아오는 바람의 신인데, 옛부터 제주 사람들이 바람을 관리하고, 대처하고, 때론 피하기도 하면서 바람과 싸워 온 힘겨운 역사를 알 만도 하다. 역시 제주는 바람의 고향이다.
한뼘의 땅이라도 더 늘려보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갯펄의 일부를 막아 뭍으로 만들고 보니 해안길은 자연스레 돌무덤을 펼쳐 놓을 수 밖에. 돌길을 걷는 이방인의 얼굴에 차디찬 바닷바람이 인다.
곽지해수욕장 한켠에 만들어진 "과물 노천탕". 이름은 노천탕인데 사실은 이곳의 용천수를 모아 해수욕을 마친 사람들을 위한 샤워장으로 쓰는 곳이란다. 예전에는 꽤나 큰 용천수로서, 물허벅을 진 아낙들의 동상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용했던 곳임을 말해주는 듯 하다.
곽지해수욕장을 끝으로 15-B코스를 벗어나 A코스를 찾는다. 처음에 윤철수 사장의 제안에 따라 시작된 코스 변경이지만, 역시 윤사장의 독도법은 대단하다. 이리저리 길을 바꾸면서 걷기를 되풀이 하더니 급기야 A코스의 중간부를 찾아낸다. 그러나 뒤따라 오는 아내와 김영희씨는 이미 늘어나는 걸음걸이에 많이 지친 듯하다. 해걸음에 점점 그림자의 길이도 길어져만 간다. 어쩔 수없이 목적지를 3키로 남겨두고 지나가는 택시에 손짓하여 도움을 청한다. 차도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 이런 곳에서 택시를 만난게 큰 행운인 듯하다. 그래도 오늘 걸은 거리가 23.2키로. 꽤 긴 거리다.
오늘의 올레 15코스 걷기가 제주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될 듯하다. 그동안의 여정을 조용히 음미해 본다. 삶의 새로운 방식이 때론 활력이 되는 듯하다. 도전이란 것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삶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도전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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