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한라산 둘레길 천아숲길, 돌오름길

sohn08 2018. 10. 13. 09:30




숲을 뒤덮은 조리대

돌오름길 건천에서 본 판상절리


  오랜동안 함꼐 생활하던 애견 뚱이가 요 며칠 무리를 했는지 많이 힘들어한다. 계속 숨을 헐떡거리고 움직이기도 힘들어한다.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주문대로 지금은 링거를 맞고 있다. 그 뚱이 때문에 아내는 동행하지 못하겠단다. 그래서 오늘의 트레킹은 혼자만의 몫이다. 대신 목적지인 천아숲길 초입까지 데려다주고 돌오름길 출구에서 픽업해 준단다. 고마운 생각이다.


  10월 중순의 아침 햇살은 밝고 따사로왔지만, 숲속에서는 달랐다. 이른 아침의 숲길은 서늘하면서도 스산하다. 까마귀와 각종 이름모를 새들만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여기저기서 시끄럽다. 온통 조용하기만 해 차라리 두려움이 더할만한 사위가 오히려 새들의 지저귐으로 위안이 되는 듯하다. 갑자기 숲길 초입의 경고문이 생각난다. 멧돼지등의 산짐승이 나타날 수 있으니 절대 혼자 걷지 마시라는....  그래도 혼자 걷는 숲길은 행복하다. 오는이 가는이 없는 호젓한 숲길을 혼자 걷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내 스스로 생각해도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물기 머금은 풀잎이며 돌맹이마저도 살아있는 듯 싱싱하다. 가끔 나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만이 정적을 깨트린다. 이때 어디선가 풀숲을 스치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그 소리가 커지더니 갑자기 멈춘다. 나도 그 소리에 머리칼이 삐죽 선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자세히 보니 나무 뒤에 숨은 것은 다른게 아닌 고라니 한마리였다. 놀란 가슴 쓰려 내리려니 그 고라니가 더욱 놀란 듯 쏜살같이 달아난다.


  천아숲길의 숲은 온통 편백나무와 삼나무다.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보이는 듯하다. 언제 또 이런걸 마셔볼까 하고 자꾸만 심호흡을 한다. 그런데 땅을 뒤덮은 것은 전체가 조리대이다. 천아숲길이 끝날 때까지 조리대는 계속된다. 조리대는 산속의 짐승들이나 사람들에게도 별로 유용한게 없는데다, 그 뿌리 또한 땅을 얽어 매어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측면에서 어떤 구제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또 유감 한마디. 이 천아숲길을 비롯한 한라산 둘레길이 옛 일제 시대때 일본군이 목재를 포함한 이 산속의 온갖 작물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임도를 이용해서 만든 길이다보니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많은 부분이 콘크리트 길이다. 돈도 들고 작업도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보통의 숲길로 바꾸는 것이 한라산 둘레길의 본 뜻에 맞을 듯하다.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고...


  천아숲길을 지나 돌오름길로 들어서면서 숲의 나무가 조금 다른 듯하다. 여기에 주로 퍼져있는 수종은 졸참나무가 주이고 삼나무와 단풍나무가 많이 퍼져있다. 특이한 것은 천아숲길을 뒤덮던 조리대가 많이 사라지고 여타 식물이 많이 분포돼있다. 특히 길 옆에는 굴거리나무라는 처음본 수종이 제일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또한 이곳 돌오름길에는 한라산 고지대의 경사면에서 분출한 열하분출 또는 틈새분출이고도 하는 분출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조면현무암류가 많이 퍼져있고, 그러한 조면현무암류가 많이 분포된 하천에는 판상절리가 잘 발달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침 어느 이름모를 건천에서 이런 판상절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소득이다.


  혼자 걷는 길이 호젓하고 또 무엇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은 점인데, 그런데도 오늘 먼길을 걸은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은 듯하다. 급할 것이 없다고, 천천히 가자고, 이것저것 보면서 기분 좋은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가자고 생각했건만 어느덧 길은 끝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 것일게다. 아마도 지금까지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내 생활의 편린인 것 같다.


  길의 마지막 출구 옆 애기단풍 나무 끄트머리에 살짝 발간 물이 드는 듯하다. 옛날 아기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물이 들듯.

오늘의 행복한 숲맞이에 아내가 같이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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