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캐나다 록키 여행 6-8일차(재스퍼 국립공원 및 밴프시내)

sohn08 2019. 7. 19. 10:50

 

  오늘은 밴프 국립공원의 시야를 완전히 벗어나 재스퍼 국립공원(Jasper National Park)으로 간다. 며칠 전에도 재스퍼 국립공원의 동남쪽 끝부분인 Columbia 대빙원을 찾은 적은 있지만, 오늘의 주목적지는 거기에서도 서북쪽으로 더 달려야 한다. 왕복 이동 시간만 대략 9시간 정도 예상되니 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가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이 산과 나무와 가끔씩 보이는 강 유역 습지의 연속이다. 요 며칠의 풍경과 다른점이 있다면 바위산에 얹어진 눈이 더 반짝이고 멀리 보아서도 더 풍성해진 느낌이다. 간밤에 이 일대에 눈이 내린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침부터 길을 재촉하는 이방인들에게 간간이 흩뿌리는 빗줄기만 시야를 흐릿하게 한다. 그런 중에도 강가를 따라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아침 안개가 맑은 날을 예언하듯이 마음의 위안을 준다.


 

 

 

 

  이른 아침, 온몸이 젖은 채로 먹이를 찾느라 분주한 곰의 모습에서 진정한 자연을 본다. 어쩌면 저들에게는 비가 오고, 바람 불고, 때로 햇빛이 내리쬐는 일련의 현상이 그들이 생활하는 한 단면일테니.


  가는 길에 도로옆 Tangle Creek에서 한컷 사진을 담으면서 눈을 들어보니, 멀리 산의 나무 색이 다르다. 푸르러야 할 잎이 누렇고 붉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나무의 색이 변하고 있나보다. 그런 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때는 선왑타 폭포(Sunwapta Fall)에 도착해서다. 소나무와 또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침엽수가 붉게 타 죽어간다. 야산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안타깝다. 이곳 록키 일대에서는 처음 본 현상인데 아마도 우리나라의 재선충 같은 병충해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밴프에서의 모습처럼 푸르기만 해야 할 침엽수림인데... 그러고보니 겨울에도 여전히 흰 눈을 이고 있는 푸르른 소나무들의 모습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선왑타 폭포에서 약 25Km 더 들어가서 만난 아싸바스카 폭포(Athabaska Fall)는 아싸바스카 강에서 생겨난 폭포로 그 높이가 약 20여m가 되는 듯하다. 두 폭포 모두 거대한 폭포라기보다는 낙차 큰 강의 흐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폭포 그 자체보다도 그 폭포를 형성하게 한 선왑타 캐년과 아싸바스카 강과 록키 산맥에서 원시의 모습을 본 것이 더 큰 행운이다.


 

 

  오늘의 주 목적지중 하나인 멀린캐년(Maligne Canyon)은 이번 여행에서 최북서쪽의 가장 먼 행선지. 카스트 지형으로 오랜 시간 석회암의 용식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캐년이란다. 그러나 캐년을 흐르는 물은 빙하수로 물살이 세차고 협곡이 깊어 캐년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어 놓았고, 물살이 소용돌이 치는 곳엔 둥근 모양의 용소를 만들어 놓았다. 캐년을 건널 수 있는 6개의 브릿지가 있고, 캐년 주변을 오르내리며 트레일 할 수 있는 길도 있어 쉽게 캐년의 속살을 볼 수 있는 호강도 누린다.


 

 

 

 

 

 

  이어서 찾은 메디슨 호수(Medicine Lake). 몇해전 생긴 산불로 호수 주변의 나무들은 시커멓고 앙상하게 변해있다. 이곳의 여름은 매우 건조하여 번개 등으로 인해 쉽게 산불이 발생한다는데 그 폐해는 실로 상상 이상이다. 멀리 푸르러야 할 산은 붉게 물들어 있는데, 이곳 호수 주변의 나무들은 그나마 다 타버린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은 때로 그 이상의 재앙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푸른 빛을 간직해야 할 호수마저 간간이 흩뿌리는 빗속에서 죽은 듯하다. 햇빛이 없으니 물빛마저 서글프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들어 낸 작은 물결만이 무심하게 넓게, 멀리 퍼져간다.


  메디슨 호수를 지나 멀린 호수(Maligne Lake)를 찾은 때는 비가 제법 내린 뒤라서인지 꽤 쌀쌀하다. 호수를 스치는 바람따라 일렁이는 물결이 방파제를 치고 사라진다. 그래도 서북쪽 하늘 끝 검은 구름 사이로 반짝 햇빛이 비친다. 때는 여름이건만 웬지 스산한 가을의 정취가 흐른다.


  멀린 호수를 끝으로 재스퍼 공원의 여행을 마치고 하루를 뒤돌아본다. 날씨도 그러려니와 메디슨 호수 주변의 전소한 산림과 붉게 물들어 죽어가는 침엽수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우울해진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질 때가 가장 자연스러운건데....


  그래도 밴프의 모습이 웅장하고, 현란하면서도 남성적인 모습이라면, 이곳 재스퍼의 모습은 원시를 간직하면서도 어딘지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여성적인 느낌이다. 밴프를 눈에 담고 간다면 재스퍼는 가슴에 담고 길을 떠난다.


 

 

  재스퍼의 호수와 캐년들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도로 양편에 펼쳐진 절벽은 그대로 한폭의 병풍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산꼭대기와 산마루 곳곳에서 떨어지는 가느다란 폭포의 선율 또한 장관이다. 구름과 만년설과 폭폭가 한데 어우러진 경치가 함꼐 흐른다. 때로는 여행의 목적지보다 그곳을 찾아 오가는 과정이 더욱 여행다운 때가 있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다. 지금까지의 어딘지 스산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펴지는 듯하다.


 

 

 

  오늘은 로키 여행 7일차.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나? 실질적으로 여행 마지막 날인 오늘은 밴프 시내를 돌아보기로 한다. 밴프 시내는 밴프 곤돌라를 타기위해서, 또 여러 여행지를 찾기위해 몇차례 지나다녔지만 실제 그 속살을 본적이 없어 오늘은 온전히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한다.


  미리 짐작은 했지만 역시 이 도시가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현지인보다 외국인 여행객이 더 북적거리는 점이다. 미국, 중국, 한국, 일본인이 주류이다. 시내를 양분한 큰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형성된 시가에는 빌딩은 고사하고 웬만한 큰 건물도 없다. 3층 건물이 극히 드물고 4층 이상 건물은 본적이 없다. 대체적으로 시내는 한산한 편이나, 도로 양편으로 이어지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 등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거리에서 부담없이 간단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들의 시선과 행동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유를 느낀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같은 여행객을 위한 곳곳의 무료 주차장은 작은 배려이면서 또한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작은 정책이리라. 여행객이 많이 찾는 이유가 물론 자연 환경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그것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큰 유인책이리라.


  그러나 어딜 가나 옥의 티는 있게 마련. 이곳에서의 눈 찌프려지는 단상 두가지. 그 하나는 거리를 오가는 관광 마차에서 풍기는 말똥냄새로, 사람들로 하여금 몹시 불쾌하게 만든다. 더구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은 말로 마차를 끌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동물 학대가 아닌가? 또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려 들른 맥도날드 음식점에서 본 쓰레기 양산 실태는 환경론자들이 보면 깜짝 놀랄 지경이다. 식사후의 일회용 물건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음료와 빨대, 햄버거 등의 음식 포장 용기며 포크와 스푼, 나이프 등의 식사 도구들과 심지어는 일회용 쟁반까지 그대로 버려진다. 우리와 같은 분리 수거도 없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큰 재앙으로 돌아올 만한 추태이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즈음의 저녁 나절은 피곤에 젖어든다. 여행은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하는 것도 즐겁지만 피곤에 지쳐있을 때는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게 최고다. 수진이가 며칠전 점심 때 보았던 길게 줄지어선 아이스크림 집에 들르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 같단다. 그래서 찾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아이들만 즐겁다.


 

 

  일주일 남짓 비워둔 집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무리 여행이 즐거워도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인걸.


  그런데 간만에 찾은 집에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집의 현관 주변에서 제비가 날고, 현관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 보니 뭔가가 푸드득 날아간다. 작은 새이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현관 문에 달아놓은 데코레이션에 이름모를 작은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네개나 낳아놓은 것이다. 현관 앞 높은 처마에는 제비가 집을 짓고 그 주변을 맴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바쁜 도회의 일상 속에 우리가 언제 새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안심하고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을 새들에겐 우리들의 출현이 몹시 놀랐을 일이겠지만, 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사람과 새가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사람의 일상이나 새의 일상이나 모두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여행한 일주일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