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양일간의 차마고도와 호도협 트레킹에 이은 오늘의 옥룡설산 트레킹은 이번 여행의 백미이다. 이틀간의 계속된 트레킹으로 피곤할만도 한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설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설레임과 호기심 때문이리라.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가끔씩 흩뿌리는 진눈깨비를 뚫고 한참을 내달린다. 가는 길 우측에 커다랗고도 파란 호수가 눈에 들어오는데, 임월곡이란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설산의 물이 흘러내려 모인 물이라는데 유명한 구채구의 물보다도 더 파랗단다. 운남성 일대에 이런 호수가 100여개가 있다는데, 비가 풍부하지 않은 날씨를 감안하여 설산의 물을 농업용수 등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만든 저수지란다.
버스로 한 시간쯤 달렸을까? "國家地質公園 云南麗江玉龍雪山氷川"이라는 표지석이 선명한 매표소에 도착하니, 바닥은 싸락눈비로 덮였는데 손에 잡힐 듯한 설산에는 해가 반짝인다. 만년설로 뒤덮인 정상에서 반사되는 눈빛에 눈이 시리다. 병풍처럼 연이은 산 정상에 쌓여있는 만년설의 모습이 '옥룡설산'이란 말 그대로 은빛 용이 길다랗게 누워있는 형상이다.
야크목장으로 가는 리프트(Yak Meadow Ropeway)로 20여분을 오르니 마침내 트레킹의 시작이다. 해발 3500m가 약간 안되는 지점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야크목장의 평원은 그저 넓고 평평하다. 그런데 그 평평한 길이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한참을 걷고보니 해발 3600m의표지가 보인다. 그러고보니 눈으로는 평평하게 보이는데 실제는 100여미터를 오른거다.
그렇게 신수(3650m)를 거쳐 산야목장에 이르니 해발 3680m. 산행은 이제 시작인 듯한데 온 몸은 땀범벅이다. 여기서 잠시 휴식 겸 점심을 한단다. 고산 트레킹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간단히 누룽지와 차를 내놓는데 그 맛이 꿀맛이다. 넓은 목장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움막같은 집에서 어떻게 이런 음식을 준비했을까? 고마울 따름이다. 식사중에도 몇몇 일행은 바로 옆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 산행의 갈림길이다. 이곳 산야목장을 중심으로 계속 상행을 할 사람들과, 이곳을 정점으로 설산의 긴 파노라마 경치를 감상할 사람들이 나뉠 지점이다. 정룡이와 나는 상행을 택했고,나머지 일행 넷은 파노라마 경치를 택했다. 아마도 고산증이 우려되어서이리라. 그러나 난 이미 지난 페루의 쿠스코 여행때 고산증에 문제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망설임 없이 산행을 택했다.
그러나 산행을 택한 몸이 그렇게 편할리 만무하다. 산야목장을 지나 운산원시림과 설산소옥을 거칠 때만해도 그럭저럭 일행을 따라갔는데, 설산소옥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니 산의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소위 베테랑이라는 사람들의 발길은 성큼성큼 거침이 없다. 자연스레 산을 타는 일행 아홉의 격차가 벌어져 길게 늘어선다. 그 늘어선 줄의 맨 마지막에 내가 간다. 내 뒤에는 일행을 책임져야하는 가이드 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빨리 산에 오르는 것만이 좋은 것인가? 불현듯 옛 직장 상사의 한 말씀이 떠오른다. 남들이 한시간에 오를 산을 두시간에 오를 생각으로 오른다면 못오를 산이 없을 것이라는.... 맞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자. 천천히 오르자. 오르다가 앞선 일행이 내려오면 같이 내려가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오르는 길이 편안해진다.
쉬엄쉬엄 발걸음을 천처히 움직이니, 마음도 편해지고 여유로와진다. 자연스레 눈길이 여기저기로 옮겨진다. 오르는 길 바로 옆으로 길게 누운 하얀 옥룡이 눈에 들어오고, 줄을 맞춰 길게 뻗은 전나무 군락의 위풍당당함도 보인다. 짓푸름을 자랑하는 우람한 나무 곁에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고사목이 하얀 나목으로 서 있기도 하다. 맞아도 될 만큼의 보슬비는 산사람의 땀을 식혀주기에 적당히 내리더니, 조금 전부터는 눈으로 변하면서 이윽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되어 내린다. 산중에서 맞는 함박눈의 호사라니....
지난 곳으로 눈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보니 안개 속에 파노라마같이 펼쳐지는 산마루의 실루엣이 눈발 사이로 어른거린다.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먼저 가던 정룡이와 일행 셋이 벌써 내려온다. 알고보니 무슨 이유에선지 배탈이 나서 도저히 못걷겠단다. 그것도 고산증이 하나의 원인이었을까?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일행의 모습이 안스럽다. 그러나 일행의 맨 끄트머리에서 따라가는 내가 남의 걱정 할 때인가? 정신을 추스려 다시 오른다. 내 뒤의 가이드는 따라오기를 포기한지 오래다. 어디쯤에서 내려오는 일행을 기다리겠지.
오르다보니 바로 위에서 도란도란 얘기소리가 들린다. 일행중 셋이서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쉬고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해발 4060m의 표지가 선명한 여신동이다. 일행을 만나 다행히 인증샷을 찍을 수 있었다. 당초 가이드가 말한 오늘의 산행 목표는 여기까지이다.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우려되어서였으리라. 그러나 이미 내려간 셋 이외의 다섯은 여전히 내 위에 있다는 안도감에 계속 오른다. 70-80m쯤 더 올랐을까? 먼저 간 일행들이 내려온다. 그러고보니 날씨마저 어두워지며 심상치가 않다. 조금만 더 오르려던 생각을 접는다. 날씨도 그렇거니와 일행이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워서다. 최선두에 서서 안내하던 현지인 가이드도 이제 모두 내려가란다. 아쉬운 마음 그지 없지만 안전이 먼저이고, 또 다른 일행들이 있어 나 혼자 늦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따라 내려온 길이지만 내려오는 것도 내가 꼴찌이다. 그런 중에도 옆으로 길게 누운 옥룡과 거기에서 반사되는 마년설의 위용에 자꾸만 눈이 간다. 지금 내려가면 저 모습을 다시 보기 어려울텐데....
후미의 가이드를 대동하고 산행 원점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나의 귀환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열심히 온다고 왔지만 이렇게 늦은 미안함에고개를 숙이는데 다들 수고했다고 박수로 맞이해 준다. 미안함이 더욱 커진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전망은 오를 때와는 사뭇 다르다.오를 때는 오로지 목표하는 산의 모습이 전부였으나, 내려올 때 발 아래 겹겹이 출렁이는 산등성이의 모습은 또다른 그림이다. 저 멀리 운해에 쌓인 산등성이의 실루엣이 하나씩 벗겨지듯 다가오니 나도 이제 산행을 마무리할 시간인 듯하다. 살면서 산행을 그렇게 즐기지 못한 나로서는 잊지못할 추억 하나 제대로 만들어 간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날아갈 듯하고, 설산에 오른 것을 생각만 해도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다음날, 오늘은 사흘간의 트레킹을 뒤로하고 여강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남겨놓은 날이다. 오늘 돌아볼 여강고성은 약 800년전 송원(宋元)대에 건립된 고풍스런 구시가로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고성이란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고성은 여강의 세습 통치자인 목(木)씨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그는 명시대 주(朱)원장이 그의 통치 능력을 인정하여 성이 없던 그에게 朱에서 모자를 뗀 木자로 성을 주어 木씨가 되었단다. 또한 木에 성을 두르면 困이 되므로 이 고성에는 성이 없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단다. 그러고 보니 이 고성은 고성인데 성이 없다. 그저 세월의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가옥이며, 마을만이 고색창연함을 말해준다.
시가에는 마을을 연결하는 수로가 여럿 보이는데 이는 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을 공급해주는 수로망이란다. 이 수로의 맨 윗물은 식수로, 중간 물줄기는 세숫물로, 마지막은 빨랫물로 사용한단다. 지하수가 없어 설산에서 흐른 물로 살아가야 하는 나시족의 어려운 생활상을 얘기해주는 듯하다.
상가의 간판들을 보니 한자어 위에 무언가 문자가 보이는데 이 문자가 이곳 나시족 고유의 전통 상형문자란다. 한자어 위에 나시족 고유의 상형문자를 쓰는 것이 나시족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나, 내 눈에는 소수 민족 정책을 끌고가는 중국인들의 속셈이 보이는 듯하다. 그런 문자 정도는 마음대로 쓸 수있게 너그러워 보이도록 하되, 큰 줄기는 한족을 따라오라는.... 언젠가 연길에 출장 갔을 때, 시내 모든 간판의 한자어 위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느꼈었는데 알고보니 그것도 소수민족 정책의 일환이었던거다.
세계 어느 도시건 여행의 중심은 광장이다. 여강고성의 중심도 사방가(四方街)라는 광장이다. 옛부터 차를 비롯한 각종 문물의 교역 중심지였던 이곳이 옛 마방들의 숙식 장소이기도 했단다.사방가의 바닥은 온갖 잡석들을 버무려 만든 벽돌로 꾸며져 있는데 그 무늬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비가 와도 흙을 구경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다. 잡티 하나 없다. 그런데도 수시로 청소차가 돌아다니며 먼지를 쓸고 다닌다. 문화 유산을 가꾸는 시민의 면모를 보는 듯하다.
사방가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은 골목마다 전통가옥이나 각종의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골목 갓길에 가꾸어놓은 화단의 꽃들이 빗물을 머금고 더욱 생생하게 우리를 맞는다. 1999년 5월 2일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강택민의 글귀가 새롭다.
이어서 찾은 흑룡담은 300년전 목씨가 만든 여강 유일의 사가 공원으로 그 규모가 대단하다. 물 부족으로 삶이 곤궁한 일반 시민들을 생각하면 이 공원의 수려한 꽃과 나무들을 주변에 둔 커다란 저수지는 눈의 호사를 넘어 사치인 듯 느껴진다.
다음은 유명한 장예모 감독이 중국의 자연과 문화를 반영하여 제작한 인상 시리즈중 하나인 "印象麗江歌舞쇼"의 관람 순서다. 이 쇼의 대강의 스토리는 (1) 차와 약초, 소금 등을 싣고 티벳으로 떠나는 나시족 마방들의 애환과 (2)남성을 성의 우상으로 여기며, 호탕하고 정열적인 삶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그리며 (3)많은 술로 부족의 단합과 즐거움을 그리는 술문화와 (4) 옥룡의 제3국인 내세에서의 사랑 얘기를 그리는 나시족 남여의 이룰 수 없는 현실 세계의 사랑 얘기와 (5)자연신을 숭배하는 나시족 동파교의 제신 의식과 기우제 등 축복을 노래하는 다섯가지 주제로 공연은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공연에 전문 배우가 아닌 약 500여명의 현지 나시족과 상당수의 말 등이 등장하고, 마이크 등이 없이 육성으로만 진행하는 약 한시간 반 이상의 대규모 공연임에도, 쏟아지는 우중에 우의를 쓰고 힘겹게 본 때문인지 그 감흥이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많은 관람객이 서둘러 자리를 뜨기까지 하는데에는, 우중에도 열정적으로 공연에 심취해 열연하는 나시족 연기자들에게 민망한 생각까지 든다.
다음은 이곳 나시족 생활의 근원인 물이 지하수 등이 아닌 설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것인 만큼, 물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물을 숭배하는 제를 주기적으로 지내는 옥수채와 여강원을 둘러보고,
라마교와 불교, 기타 잡신을 모두 숭배한다는 만신의 절인 동파묘(東巴廟)를 마지막으로 본다. 이 동파묘는 나시족 절의 발상지이며, 향 대신 솔잎을 태우며 소원을 비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커다란 돌탑에 오색의 띠를 묶고, 돌탑 아래 작은 향불 구멍에 솔잎을 태우는 모습이 흡사 옛 우리 선조들의 샤마니즘 문화를 보는 듯하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밴프 여행 3일차(모레인 호수와 밴프 곤돌라) (0) | 2019.07.07 |
---|---|
캐나다 밴푸 여행 1-2일차(루이스 호수와 바우써밋) (0) | 2019.07.06 |
차마고도와 호도협 (0) | 2019.04.06 |
동강 어라연과 태백의 설원 (0) | 2019.01.30 |
태백산 산행기 (0) | 2019.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