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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옥산

sohn08 2020. 1. 23. 03:32

 

  한반도 서편을 따라 내려오던 비행기가 작은 창문 틈으로 빼꼼히 추자도를 비치더니, 어느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뿌연 하늘에 익숙해진 탓인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희뿌연 산야가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32년만에 찾는 대만 여행이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옥산 등산길이다. 이번에도 진욱이와 정룡이와 함꼐 한다.


  "대만" 하면 내게 떠오르는 분이 있다. 지금은 성함도 잊은지 오래된 중1때의 멋진 지리 선생님. 대만을 얘기하실때 잘 생긴 고구마 같이 생긴 섬이라고 하시던 분. 그 당시 여행가 김찬삼 선생을 소개하시면서 어린 우리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 주시던 분. 그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공항에서 맞이해주는 가이드는 장동성이란 분인데 '라오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우리나라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 2세란다. 동방명주호텔(東方明珠國際飯店)로 가는 3시간 반 동안 대만을 소개한다. 다음은 그중 몇가지.


  1. 대만의 인구는 약 2300만명이고, 그중 10%쯤이 원주민이며 보통의 동남아인과 비슷한 모습이고 나머지는 한족이라는 점.(실제 지금 이 버스의 운전 기사가 원주민인데 그 모습이 한족과는 확연히 다르다) 2. 전체적으로 대만은 섬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큰 산맥을 이루고 옥산은 그 산맥의 중남부에 위치한다는 것. 3. 이 땅이 원래 바다 밑에서 융기하여 생긴 섬으로 원주민들이 바다에 떠있는 섬이라 하여 臺灣(그들 발음으로 타이완)이라 하였고, 4. 지진은 언제나 일상화 되다 싶이 하여 항상 지진과 같이 생활하며 그 여파로 옥산의 높이도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고 하며,(실제 어제도 진도 3.8의 지진이 있었다고 함.) 5. 일본이 과거 53년간 지배하던중 이곳에서 후지산보다 더 높은 산을 발견하여 신고산(新高山)이라 했다는 얘기며, 6. 우리가 의식주라고 하는 대신 대만은 식의주라고 하는 만큼 먹는 것을 중히 생각한다는 것. 7. 또한 대만도 정치 문제로 경제가 아주 어렵고 민심이 둘로 나뉘었으며, 화력 발전소와 자동차 문제 등으로 미세 먼지가 대단한 것이 모두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 8. 산 사람들의 보통 집을 양택이라 하고 죽은 자에게도 음택이라 하여 집을 지어 모신다는 점. 9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특히 심하여 일례로 오늘과 같은 좋은 등산 환경에서도 옥산 입산시 규정에 따라 반드시 피켈과 헬멧 등을 구비해야만 입산을 승인한다는 등(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고 간단히 입산 허가를 받았음)의 비판적인 얘기가 많았다. 듣고보니 매사가 우리나라와 아주 흡사하다는 느낌이다.


  대만 얘기에 흠뻑 빠져버린 사이 버스는 잠시 휴게소에 머문단다. 이곳의 휴게소는 땅이 좁은 관계로 주도로에서 멀리 빠져나와 별도의 한적한 곳에 만들어진 게 특징이란다. 최근의 이나라 경기 상황을 말해주듯 대규모의 휴게소에 비해 차와 사람이 별로 없다. 서해안에 연해 있어서인지 거센 바람만 스산하다.


 

 

  고속도로를 3시간 반여 달려서 도착한 가의(嘉義)시. 아름답고 의로운 시라는 뜻인데 뜻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여수 만큼이나 이름이 더욱 아름답다. 오래 전부터 주로 원주민들이 모여 살던 자그마한 마을이란다. 이런 작은 마을에 이렇게 호화롭고 훌륭한 호텔이라니? 주변의 환경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東方明珠大飯店이란다. 호텔 내부의 장식이나 비품 등도 여느 일류 호텔에 뒤지지 않을 듯하다. 다만 옥산에 최대한 가까이 위치하려다 보니 이런 초라한 마을에 위치하였을 뿐.( 그래도 여기서 버스로 2시간 반을 달려야 옥산국가공원에 닿을 수 있지만) 그동안 버스 속에서 지친 몸도 몸이려니와 내일의 산행을 위해서 오늘 저녁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호텔을 떠난 버스는 고도를 높여가며 계속 달린다. 어느만큼 달렸을까, 갑자기 가이드의 목소리가 일행을 집중시킨다. 창밖을 보니 차밭과 함께 조금은 큰 마을이 나타난다. 해발 2000m를 넘긴 이 지점이 원주민 마을이며 기후상으로는 열대와 아열대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란다. 아마도 살기 적당한 곳에 원주민들이 마을을 조성한 것이리라. 이곳 부근 편의점에서 오늘 점심으로 대용할 삼각 김밥과 추가로 컵라면을 준비한다. 산장에는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혹시 모를 저녁 까지 준비한 것이다.


  그렇게 2시간 남짓 달려 동포관리사무소에 도착, 다시 미니밴을 갈아타고 찾은 곳이 '배운관리소'(排雲官理站). 이곳에서 입산신고를 마치고 별도의 등산 가이드와 조우하여 다시 미니밴으로 20여분을 오르니 드디어 산행 시작점인 타타카안부에 이른다. 해발 2,760m. 진욱이와 정룡이와 화이팅을 외치고 마침내 산행을 시작한다.


 

 

 

  가이드가 들려주는 산행전 주의점. 이 산은 다른 어떤 산보다도 고산 증세가 가장 빨리 오는 산으로 유명하단다. 가급적 보폭을 작게 하고 심호흡을 자주 하며 천천히 가란다. 산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퍽이나 다행이다. 늦은 걸음으로 남에게 피해라도 주지 않을지 내심 걱정이 컸던게 사실이다. 그렇다.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말고 묵묵히 걷자. 내 호흡으로 걷자. 그것이 바로 제대로 걷기이고 인생 또한 그런 것인 걸.


  산행 초입이라서 크게 힘들지 않게 올라왔는데도 어느새 땀이 범벅이다. 맹록정(孟綠亭)이란다. 해발 2,838m. 미국의 세무사로 대만의 세무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대만에 머물면서, 1952년 옥산 등반중 실족사한 J.E. Monroe를 추념하기 위한 정자란다. 발아래 펼쳐지는 산등성이가 몇굽이인지 모르겠다. 오던 길을 되돌아보니 산허리를 가로지른 굽이길이 지그재그로 흐느적거린다.


 

 

 

 

  맹록정을 지나 얼마나 갔을까? 넓은 데크에서 주변의 풍경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커다란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서봉관경대란다. 정자 이름으로 보아 정면에 우뚝 서 있는 봉우리가 서봉인가 보다. 오늘따라 유난히 햇빛이 좋아 봉우리의 모습이 완연하다. 이번에도 우리는 럭키 가이인가 보다. 그리고 잠시 후 눈에 들어오는 돌산 봉우리, 이번 산행의 목표인 옥산 주봉이 멀리서 손짓한다. 나무 하나 없는 듯한 흰 바위 봉우리, 그 포스가 다르다.


  여기서부터 보이는 푸른 산과 바위산, 고산 지대의 푸른 나무와 고사목은 그대로 조화로운 한 폭 그림의 연속이다. 산허리를 뚝 끊어 만든 돌길은 갈지자로 오르락 내리락하며 주변의 나무 뿌리를 계속 귀찮게 한다. 길의 생김새가 마치 2년 전에 다녀온 중국 여강 지방의 차마고도를 그대로 빼닮았다.


  이윽고 만난 대초벽(大峭壁). 옛 바다 밑의 필리핀해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충돌하여 융기한 결과 3,000m 이상의 고봉이 300개 정도 생겼는데 옥산도 그중의 하나이며, 그때 이루어진 45-60도 이상의 급경사 바위벽 형상은 지금도 여전히 꿋꿋이 서 있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배운 산장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점. 바로 앞에 등산 배낭이 아닌 커다란 짐을 등과 손과 머리만을 이용하여 지고가는 짐꾼이 보인다.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무게일 듯한 짐을 지고 오르는 사람. 무슨 이유에선지 등산화도 아닌 장화를 신고 짐을 운반하는 사람도 있다. 저런 수고의 댓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의 노력에 갑자기 내 자신이 숙연해진다.


  이윽고 도착한 배운산장(排雲山莊). 산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하는 깊고도 그윽하다. 왼편으로는 서봉 부근까지 이어진 산등성이의 연속이고, 오른편은 숲으로 뒤덮인 산허리. 그 사이를 운해가 뒤덮고 이글거리는 태양은 운해를 녹일 듯 파고든다. 너나 할 것 없이 일몰의 순간을 포착하느라 죽 늘어섰다. 어떻게 이런 곳에 산장을 자리했을까? 그 혜안에 고개가 숙여진다. 5시 반이 지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해가 구름 속을 파고든다. 사위가 시뻘개진다.일렁이던 운해가 벌건 띠를 길게 드리운다.산장 앞으로 양편에 서 있는 커다란 삼나무의 실루엣이 넘어가는 태양과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그렇게 산마을에 황혼은 짙어지고 산하를 곱게 물들이던 마지막 석양도 서서히 사그라진다.


  이곳 배운산장의 정원은 80명이라는데 오늘 저녁은 우리 팀 11명과 다른 두어 팀이 전부인가 보다. 간단한 빵과 약간의 밥과 닭다리 하나가 전부인 저녁은 산속의 단촐한 식사라 해도 어딘지 섭하다. 가이드가 귀뜸해준 컵라면의 위력이 이렇게 클 줄이야! 뜨끈하지는 않더라도약간은 따뜻한 물로 훑어낸 면발은 그렇다치더라도 국물 맛의 묘미가 크다.


  저녁을 마치니 밖에도 나갈 데 없고, 할 일이 없다. 절해고도다. 자는 일 밖에 없다. 숙소라지만 산속에서의 마루 바닥 취침은 추울 수 밖에 없다. 양치만 했을 뿐 세수도 못한 몰골로 준비해온 옷을 모두 껴입고 주어진 침낭에 몸을 밀쳐 넣으며 잠을 청한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조금 아파오면서 잠이 오질 않는다. 옆 사라의 코고는 소리에 내 심장은 장단을 맞추듯 쿵쿵거린다. 지루한 밤이 길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잠은 커녕 정신만 더 또렸해진다.


 

 

 

 

 

 

  새벽 2시 반. 잠은 잤는지 않잤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덩달아 일어난다. 다행히 머리는 아프지 않다. 왠지 기분도 상쾌하다. 다행이다. 그런데 진욱이가 머리가 많이 아프단다. 내가 미리 준비했던 수면 유도제까지 줬는데도 잠을 한 숨 못 잤단다. 하기야 나도 그랫으니.... 고산증이 틀림없다. 어쩔 수 없이 진욱이는 여기서 쉬라 하고, 산장에서 주는 미음으로 요기를 끝낸 다음, 정룡이와 산행을 나선다. 진욱이 외에도 일행중 다른 두 분이 산행을 포기하여 모두 8명이 함꼐 한다. 가이드를 선두로 하여 일렬로 늘어서서 걷기 시작한다.


  스틱과 헤드렌턴에 의존하여 걷는 산행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저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무심히 따를 뿐이다. 발길에 채이느 자갈의 사그락 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달빛도 없는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다행히 오늘도 날은 좋은 모양이다. 어느만큼 갔을까? 어느덧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지는데, 들고 있는 스틱을 모두 그 자리에 놓으라는 가이드의 지시(?)다. 고도가 높아지며 경사가 급해진 것이다. 급한 바위 경사를 따라 이어진 쇠사슬을 붙잡고 지그재그로 계속 오른다. 바위와 자갈길의 연속이라서 조심해야 된다는 생각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힘든 걸 전혀 모르겠다. 정상이 가까와지면서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 때문인지 땀이 나는 것도 잘 모르겠다. 바람 부는 시간이 잦아지더니 큰 바위 하나를 돌면서 오른편에 희미한 탑의 실루엣이 보인다. 옥산 주봉 정상석이다.


  정상에 오르려는 순간 세찬 바람이 온 몸을 때린다. 5시 반 쯤 된 듯하다. 이미 올라온 사람들이 주변에 여럿 보인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여러가지다.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 바위 틈에 숨어 바람을 피하는 사람, 어둠 속에서도 주변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 등등...


  나는 정상석 바로 아래 큰 바위를 뒤로 하여 바람을 피하며 사위의 변하는 모습을 감상한다. 동편 하늘에는 일출을 위한 여명이 스멀스멀하고, 북쪽 하늘에는 갑자기 생겨난 커다랗고 둥근 검은 구름이 삽시간에 하늘로 오르며 마치 용트림하는 모습으로 산위에 걸려있다. 동편 하늘에 길게 늘어선 운해를 붉게 물들이던 태양의 힘이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불끈 솟아오른다. 모두가 '와'하고 함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순간적으로 올라오니....


  타오르는 해를 보며 기원한다. 2020년대의 10년간의 건강과 행운을....


  태양과 운해와 새벽의 찬란한 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떠나기 싫긴 하지만 또 일정이 있어 서둘러 하산한다. 우리가 오르던 서편 하늘의 운해가일대의 산등성이를 휘감아 장관을 이룬다. 그런데 이 길이 뭔가? 이렇게 가파른 바윗길이었던가?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앞사람 등만 보고 쫓았었는데....


  하산길에 보이는 이곳 산맥의 능선들이 마치 지난해 보았던 캐나다 밴푸의 고산지대 모습이다. 빙하에 쓸려내린 자욱과 같이 휩쓸린 산허리.  300년을 자라도 키가 보통 사람의 키에 불과한 나무들. 이들은 분명 세찬 바람을 피해가는 지혜를 알고 있을터다. 얼마를 내려오다 보니 이름 모를 연분홍 꽃이 수줍은 미소로 맞이해준다. 돌과 돌틈 사이의 척박한 자리에서 어떻게 자랐을까? 생명의 경이를 느낀다.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오를 때 못본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고... 그렇다. 나도 그렇다. 지난 수십년을 그렇게 기를 쓰고 오르려만 했지, 곁을 보지 못했다. 이제라도 쉬엄쉬엄 주변도 둘러보고 돌틈 사이 어려운 구석도 보면서 살 일이다.


  배운산장을 거쳐 원점으로 회귀하는 길은 지루하기만 하다. 어렵사리 내려와 식사를 마치고 5시간 남짓 걸리는 호텔로의 귀로에는 달콤한 피로감에 젖는다. 무언지 모를 기분 좋은 피로감.


  부신대반점(富信大飯店)이라는 숙소에 도착하니 집떠나면 고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얀 침대 시트에 잘 정리된 숙소와 어젯밤 산장에서의 잠자리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만을 위해 맞춘듯이 비치한 모든 물품과 어느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말끔히 정돈된 이 공간이 고맙게만 느껴진다. 물론 이 호텔도 며칠 후면 다시 집이 그리워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