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프 여행 5일차(미네왕카,투잭 호수와 존스턴캐년)
밴프 일대의 여행을 시작한 후 며칠동안 비가 올듯 올듯 하면서도 잘 참아주더니, 간밤에는 몇차례 후두둑 후두둑 하는 거친 빗소리와 함께 요란한 뇌우의 굉음도 같이 들려오곤 했다. 하지만 호텔 베란다 창문으로 비치는 록키 산 정상의 만년설은 오늘 아침도 여전히 맑은 햇살에 반짝인다. 비가 멈춘 것이다. 비온뒤, 시내를 감싼 산맥의 허리에서 내려온 안개는 바우강을 따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간밤에 비를 머금은 초록의 침엽수들이 청초로이 고요한 풍경을 자아낸다. 촉촉히 젖은 대지 위에 섭씨 12도의 적당한 날씨마저 너무도 호사스런 아침이다. 오늘의 주목적지 미네왕카 호수(Minnewanka Lake)로 가는 길이다.
밴프 곤돌라에서 본 전경. 산아래 미네왕카 호수가 보인다.
미네왕카 호수. 어저께 밴프 곤돌라 정상에서 북쪽으로 빼꼼히 보이던 호수. 루이스 호수나 모레인 호수 등에 치여 유명세는 덜 하지만, 그래도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호수로 유명하다. 특히 오늘처럼 비온 뒤의 안개를 동반한 호수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호수 건너편 거대한 산 중턱에 걸쳐있는 안개 구름의 아름다움이 오늘의 걸음걸이를 더욱 즐겁게 한다. 오늘의 트레일은 미네왕카 호수를 끼고 스튜어트 캐년(Steuart Canyon)을 왕복하는 2.8Km. 호수를 따라 만들어진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숲속 산길이다.
걷는 길에 은서는 뭐가 불만인지 조금 뾰로통해 있는 것이 더 귀엽다. 그런데 주원이는 뭐가 신난는지 계속 재잘거리며 잘도 걷는다. 주원이를 따라 앞에서 걷는 내 마음도 같이 신난다. 시간을 아껴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쉬엄쉬엄 천천히 걷는 것은 사치로 생각하지만, 오늘 나는 주원이와 같이 그런 사치를 흠뻑 누리며 걷는다. 누구보다 잘 아는 내 보폭으로, 내 호흡으로. 그런데 재잘대면서 바삐 움직이는 주원이의 걸음이 어쩌면 내 걸음과 이렇게 잘 맞을까?
그러나 아뿔싸! 스튜어트 캐년의 반환 지점 부근에서 길에 미끄러져 삐끗한 허리 통증이 종일 괴롭힌다. 경험상 이 통증은 보통 10여일 계속되는데 걱정이다.
스튜어트 캐년을 만든 캐스케이드강(Cascade River)은 매우 거칠다. 어제 내린 비로 더욱 거칠어진 강은 강폭마저 넓혀 놓은 듯 하다. 그 강을 건너려 예닐곱의 젊은이들이 Zip Line을 만들고 있다. 건너편의 서너명도 이 작업에 동참하는 듯하다. 강 폭이 약 20-30m쯤 되어 보이는데 그 용기 내지는 모험심이 대단하다. 아마 이런 모험심으로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진 게 아닐까?
푸른 미네왕카 호수를 뒤로하고 약 10분쯤 후에 만난 투잭 호수(Two Jack Lake). 비갠 뒤의 호수는 아늑함을 간직한채 고요하다. 어딘지 모르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호수 주변의 빼곡한 침엽수림이 물속에서 하늘거린다. 이 지역 대부분의 호수가 주변의 산에 둘러쌓여 있는데, 이 호수만은 주변이 산이 아니다. 그저 숲이다. 어쩌면 습지에 조성된 침엽수림인지도 모르겠다. 호수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듯한 운치있는 그림이다. 비온 뒤의 상쾌함을 만끽하려 한 떼의 오리 가족이 평화로운 나들이를 즐긴다.
투잭 호수에서 존스턴 캐년으로 가는 길은 산과 산 사이를 지나는 굽은 길이 많다. 그런 길섶에 누런 곰 한 마리가 풀을 뜯고있다. 흔한 모습인데도 그 모습에 오가는 차들이 모두 선다. 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할 일만 한다. 그런데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바로 나타난 공원 관리인이 지나가라고 손짓한다. 곰이 놀라지 않도록 하는 배려이리라. 존스턴 캐년에 도착하여 트레일 중에 처음 본 안내문도 역시 이곳의 동물 보호를 위해 먹이를 주지도, 버리지도 말라는 포스터이다.
존스턴 캐년은 규모는 작지만 원시를 그대로 머금은 가장 자연스런 캐년이다. 캐년을 흐르는 작은 크릭은 때론 거칠게, 때론 유유히 지형을 따라 흐른다. 계곡을 이루는 산과 바위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려 몸부림치는 작은 나무들의 자태가 모두 굽어있거나 옆으로 뻗어있다. 환경이 만들어낸 생태계의 모습이다. 그런중에도 여기저기서 여행객의 환영을 받는 다람쥐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 다람쥐도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걸까? 먹이를 주려는 듯한 시늉에 또다시 속아 몸을 쫑긋 일으켜 세운다.
존스턴 캐년의 트레일은 Lower Fall까지 왕복 2.2Km이고, 그곳에서 Upper Fall까지 2.6Km인데 우리는 Lower Fall까지만 다녀오고 트레일을 마쳤다. 내 허리도 문제지만 그간의 계속된 강행군(?)으로 모두들 잘 됐다고 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