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푸 여행 1-2일차(루이스 호수와 바우써밋)
은서의 여행후 감상도
영원한 5월의 소년 피천득 선생은 딸 '서영이'를 제목으로 한 글에서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라고 하였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젊은 시절을 훌쩍 뛰어 넘은 내게도 그런 귀한 선물이 있는데, 은서와 주원이가 그들이다. 선생의 말씀대로 새로 나온 잎새같이 보드라운 뺨을 만져보고 그 맑은 눈 속에서 나의 여생의 축복을 받고 싶은 아이들이다. 왠지 모르게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친근해지고 싶어진다. 그 애들을 볼 때면 이성적인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감정적인 생각만이 머리에 들어차 무조건 사랑하고 싶어진다. 이 아이들과 함께 할 이번 캐나다 록키 여행 때문에 며칠 밤을 설레었다.
캘거리 가까이 온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캘거리 인근에는 정리가 잘된 농지와 주택가, 호수 등이 전체적으로 푸르다. 마지막으로 발산하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뭔지 모를 흰 건물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오스틴에서 출발할 때 이곳 날씨가 좋지 않을 거라는 일기 예보와는 달리 쾌청한 하늘이다. 하지만 검거나 흰 구름이 층을 이뤄 오락가락 하는게 살짝 불안하다.
캘거리 시내에서 한눈에 보는 전경은 넓고도 평평하다. 언젠가 동계 올림픽을 치뤄냈던 도시치고는 큰 건물이 눈에 안띈다. 서울에서 우리의 눈에 익숙했던 산이 안보이고 그저 사방팔방이 하늘이다. 그 넓은 하늘에 한쪽은 먹구름인데 한쪽은 해가 비친다. 걱정스러운건 우리가 가고 있는 서쪽이 시커멓다는 것이다. 우리의 숙소는 캔모어로 캘거리에서 차로 한시간 반가량 달려야 한다.
조금은 늦은 저녁 때문에 숙소로 가는 시간이 조금 지체되다 보니 가는 길의 주변 풍광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오후 10시 반인데도 서북쪽 하늘 끝에는 넘어가는 해에 비친 산꼭대기가 하얗게 반짝인다. 그러고보니 여기가 꽤나 북쪽인가 보다. 어두운 길을 달리는데도 강가를 따라 돌아가는 도로 옆 쭉쭉뻗은 침엽수의 실루엣이 삐죽삐죽 솟은 먼 산봉우리와 구름을 배경으로 이룬 조화가 아름답다.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목적지 파라다이스 호텔에 도착한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지 오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우리의 숙소인 파라다이스 호텔이 보이지 않는다. 알고보니 이 호텔은 GR Hotel(Glacier Resort Hotel)의 룸 몇개를 공유하여 운영한단다. 우리 나라에서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동차 공유를 뛰어넘어 여기는 호텔 룸을 공유한다. 늦은 밤에 숙소 찾느라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공유 경제의 진면목을 본다.
여행 2일차. 오늘의 목적지는 루이스 호수(Lake Louise)와 주변의 몇몇 호수. 루이스 호수를 찾아가는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가는 길에 연해있는 잿빛 바위산과 그 사이 사이를 채워 넣은 만년설, 산아래 펼쳐진 침엽수와 푸른 하늘, 흰 구름이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바우강(Bow River)의 옥색 물줄기가 거세다. 저렇게 많은 양의 강물이 녹은 빙하의 양이라 생각하니 산위의 만년설을 언제까지 볼수 있을까 슬그머니 걱정된다.
한 시간을 달려 찾은 루이스 호수. 그러나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이미 주차 공간이 없어 다시 온 길로 한참을 내려가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와야 했다. 30분 남짓 걸었을까? 동화 속에서나 볼 듯한 숲속의 성 같은 커다란 호텔이 보이더니 바로 그 앞이 호수다.
호수 양 옆은 거대한 잿빛 바위와 침엽수림이, 그리고 전면의 커다란 산에는 만년설이 흩어져 있는데, 그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바위와 만년설과 침엽수림으로 둘러쳐진 옥색 호수는 신비로움을 더하는데 그 위에 몇몇의 카약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다. 이 모습에 얼마나 감명 받았으면 일본의 유키 구라모토라는 사람은 Lake Louise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을까?
이 호수가 로키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라는데, 알고보니 호수 전면의 만년설을 품은 산 이름이 Victoria Mt (3464m)이고, 이 호수의 이름인 Louise도 Victoria의 넷째 딸 이름이라니 산과 호수를 그렇게 명명한 이유를 알만도 하다.
호수를 끼고 오른편 산으로 2.9Km를 오르니 아주 작지만 깨끗하여 모든게 비친다는 미러 호수(Mirror Lake)가 나타나는데 호수 뒷편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거만하게 서있다. 이곳 미러 호수에 눈이 없다고 떼쓰는 은서와 주원이를 아내와 수진이와 함께 남겨두고, 0.8Km를 더 올라가 신비의 호수인 아그네스 호수(Lake Agnes)를 만난다. 이곳에서 만년설의 일부 잔설을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선물하니 좋아라 뛰는 모습에 내 마음도 날아갈 듯 하다.
전망대에서 루이스 호수를 보기 위하여 찾는다는 Lake Louise Gondola는 겨울 스키장의 곤돌라를 비수기에 잠시 사용하는 것인데, 곤돌라 정상에서 보는 루이스 호수 일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 최고봉인 Mt. Temple(3543m)을 비롯하여 Victoria Mt.과 루이스 호수도 멀리서 신비롭게 다가온다.
루이스 호수를 뒤로 하고 93번 국도를 따라북서쪽으로 다음 일정을 찾아 나선다. 고속도로와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국도이다.편도 1차선이지만 오가는 차들이 뜸하여 교통 흐름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국도이지만 가는 길에 Crowfoot라는 까마귀 발 모양의 거대한 빙하를 볼 수 있는 간이 주차 공간도 만들어 놓았다. 여행객들을 위한 배려가 아름답다. 멀리서 보는 까마귀 발 모양의 빙하 세 곳중 맨 아랫쪽 빙하가 많이 녹아서 툭 떨어져 나간 모습이 안타깝다. 과연 까마귀 발 모양을 지금처럼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
Crowfoot와 인접해 있는 Bow Lake 역시 길가에서 잠시 여유를 갖고 바라보기에 좋은 호수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호수 주변 트레일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다음 일정 때문에 스치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바우 호수를 지나 바우강을 따라가다 보면 Bow Summit 전망대에 오르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여기가 루이스 호수에 이은 오늘의 주 목적지이다. 주차장에서 약 15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가 보이는데, 여기서 보는 발 아래 Peyto Lake와 산 정상에서 호수 입구까지 미끄러지듯 쓸려내려간 빙하의 흔적은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설산에도, 빙하에도, 빙하에 쓸려간 모래톱에도 세월의 더깨가 그대로 묻어난다. 이 모든 풍경은 역시 세월이 빚어낸 명화다. 오전과 달리 강렬한 햇빛이 물러나고 구름과 함꼐 약간의 스산함이 다가오니 저 아래 비치는 호수의 색깔은 더욱 짙푸르다. 선명하게 보이는 곰발바닥 모양의 푸른 호수는 차라리 하나의 조각품이다.
이제 Bow Summit을 끝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는 길에 Bow Valley Parkway를 거쳐 가기로 한다. 이 길은 바우강을 사이에 두고 1번 고속도로 건너편에 만든 드라이브 전용 도로로 왼편에는 캣슬산을, 오른편엔 바우강과 기찻길을 따라간다. 도로 자체가 한적하기도 하거니와 각종의 동물 보호를 위하여 일정 기간 중에는 교통 통제를 한다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 도로 양 옆을 메운 침엽수림을 스치고 달리는 드라이브는 환상 그 자체이다. 침엽수림 사이에 어쩌다 한 그루의 흔들리는 사시나무의 이파리만이 바람 소리를 느끼게한다. 한적한 도로 양 옆에 웬 차들 몇대가 서 있어서 따라 서 보니 큰 사슴 한 쌍이 바로 옆에서 풀을 뜯고있다. 이 목가적인 모습에 서는 차들의 숫자가 늘어난다.